부동산 신탁의 공시와 신탁원부의 대항력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동향
페이지 정보

본문
신탁이 설정되면 신탁재산의 소유권은 수탁자에게 법적으로 완전히 귀속되지만, 신탁재산은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분리되는 별도의 독립한 재산으로 취급한다.
따라서 신탁사무의 처리와 관련된 법률행위의 상대방이 아닌 한 수탁자의 일반 채권자들은 신탁재산을 집행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
수탁자의 파산 시에도 파산재단을 구성하지 않는 등 독립성을 가지는 만큼, 신탁법은 신탁재산의 독립성에 따른 여러 이해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공시방법을 규정하고 있다.
신탁법상 신탁된 부동산은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분별하여 관리하고 신탁재산임을 표시하여야 하는데(제37조 제1항), 부동산은 신탁등기를 함으로써 그 부동산이 신탁재산이라는 사실을 공시할 수 있다.
신탁등기를 통한 신탁의 공시는 신탁법 제정 당시부터 존재하던 내용으로, 부동산등기법 역시 일관되게 신탁원부를 등기부의 일부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대법원은 신탁원부에 기재된 사항 모두(위탁자와 수탁자가 신탁행위에서 약정한 내용이 신탁원부에 포함되어 등기부에 편철된 경우 그러한 신탁계약상의 약정 내용)에 대하여 대항력을 인정하는 판단을 하였고, 이는 최근까지도 중요한 법적 기준으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2025년 2월 13일 대법원은 현행 신탁법 제4조에 따른 신탁등기의 대항력은 “해당 재산이 신탁재산이라는 사실에 한정된다”고 판단하였다.
즉 신탁등기의 대항력을 신탁재산의 독립성에 한정하는 판단을 내놓은 것이다.
한편 대법원은 기존의 판결이 구 신탁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현행 신탁법에 적용될 수 없다고 하였을 뿐 기존 판결을 변경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구 신탁법이 적용되는 사안에는 기존의 판결이, 현행 신탁법이 적용되는 사안에는 이번 판결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해당 재산이 신탁재산이라는 사실만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라는 판결의 의미를 신탁원부에 기재되는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모든 법률관계’까지 신탁원부의 대항력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신탁원부의 공시력 자체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것이므로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구 신탁법(2011. 7. 25. 법률 제10924호로 개정되기 전의 신탁법) 및 현행 신탁법 비교
구 신탁법 |
현행 신탁법 |
제3조 (신탁의 공시) ①등기 또는 등록하여야 할 재산권에 관하여는 신탁은 그 등기 또는 등록을 함으로써 제삼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
제4조(신탁의 공시와 대항) ① 등기 또는 등록할 수 있는 재산권에 관하여는 신탁의 등기 또는 등록을 함으로써 그 재산이 신탁재산에 속한 것임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 |
구 신탁법이 적용된 기존의 판례
구 신탁법이 적용된 사안에 관하여 대법원은 신탁원부에 포함된
① 신탁이 종료할 때에는 신탁재산에 부대하는 채무(임차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의무)는 수익자가 변제하여야 한다는 조항(대법원 1975. 12. 23. 선고 74다736 판결),
② 신탁계약의 종료 또는 해지 후 상가공급계약에서 발생하는 채무(수분양자에 대한 손해배상의무)를 수익자가 부담한다는 조항(대법원 2001. 11. 9 선고 2001다58054, 58061 판결),
③ 신탁부동산의 임대로 인하여 발생한 임차인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의무가 신탁종료 시 위탁자에게 귀속된다는 조항(대법원 2004. 4. 16. 선고 2002다12512 판결),
④ 집합건물의 공용부분 관리비를 위탁자가 부담한다는 조항(대법원 2012. 5. 9. 선고 2012다13590 판결),
⑤ 수탁자의 사전 승낙 아래 위탁자가 부동산을 임대하도록 하는 조항(대법원 2022. 2. 17. 선고 2019다300095, 300101 판결)이
문제된 사안에서 신탁원부에 위 조항들이 기재되어 있다면, 수탁자는 이로써 구 신탁법 제3조에 따라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판시해 왔다.
즉, 구 신탁법 하에서 대법원은 신탁원부의 대항력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입장이다.
현행 신탁법이 적용된 판례(대법원 2025. 2. 13. 선고 2022다233164 판결)
사실관계
원고는 집합건물의 구분소유자 전원으로 구성된 관리단이고, 피고는 집합건물 중 5개 호실에 관하여 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신탁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수탁자이다.
신탁부동산의 수탁자인 피고가 위탁자와 체결한 담보신탁계약에는 위탁자가 신탁부동산의 관리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하고 이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한다는 규정과 신탁사무의 처리에 필요한 비용과 수탁자의 고의나 과실 그 밖의 책임 없는 사유로 발생한 손실 등은 위탁자가 부담한다는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원고는 수탁자인 피고에게 체납된 관리비를 청구하였다.
대법원의 판단
대법원은 신탁부동산에 관한 신탁의 등기로는 신탁부동산이 수탁자의 고유재산과 분별되는 신탁재산에 속한 것임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을 뿐, 신탁계약의 내용으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는 없다고 하며 원심 판결을 파기 환송하였다.
현행 신탁법 제4조 제1항의 취지는 어떠한 재산의 등기 또는 등록을 하면 그 재산이 수탁자의 다른 재산과 독립하여 신탁재산을 구성한다는 것을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는 의미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신탁계약의 내용이 신탁원부에 기재되더라도 위와 같은 신탁재산의 구성에 관한 사항 외에는 이로써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따라서, 비록 수탁자인 피고와 위탁자 사이의 신탁계약상 신탁부동산에 관한 관리비 납부의무를 위탁자가 부담하는 것으로 정하였고 이러한 사정이 신탁원부에 기재되었다고 하더라도 위 신탁계약의 내용으로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신탁원부 기재사항의 대항력의 근거
부동산등기법에서 신탁원부를 등기기록의 일부로 본다(제81조 제3항)고 규정하여 바로 신탁원부에 기재된 사항에 실체법상 대항력이 발생한다고 볼 수 없다.
부동산등기법 제81조는 조문의 제목을 “신탁등기의 등기사항”으로 정하고 있는데, 부동산등기법에서 다른 물권에 관한 등기사항을 정하는 체계와 형식에 비추어 보면 실체법인 신탁법 제4조에 따라 해당 재산이 신탁재산에 속함으로써 대항력이 미치는 신탁사항을 부동산등기법에 등기사항으로 규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등기할 사항이 방대하여 해당 등기사항을 등기기록에 기록하지 않고 별도의 신탁원부에 기록하는 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따라서 기존의 대법원 판례가 신탁원부를 등기부의 일부로 보고 그 기재는 등기로 보기 때문에 신탁원부에 대해 대항력을 인정한 것은 신탁법 제4조에 따른 대항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기존 대법원 판결에 대하여 신탁등기의 대항력이 미치는 범위를 “신탁재산에 속한 것임”을 넘어서 신탁원부에 기재된 ‘위탁자와 수탁자 사이의 법률관계’에 까지 확대한 것이어서 부당하다는 견해는 부동산등기법 제81조의 입법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따라서 신탁원부의 등기사항과 대항력이 예측가능한 범위로 신탁원부에 기재할 등기사항을 정비하는 것으로 해소하여야 할 것이다.
- 이전글주문진 바다에서 다시 묶은 인연, 여온의 두 번째 워크숍 25.11.14
- 다음글신탁부동산과 전세사기 - 법의 신뢰가 무너지는 지점 25.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