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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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언 31:8)"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이자 내가 생각하는 업의 본질이다.
이를 보다 간추리면, “소수자를 위해 입을 여는 변호사”가 우리의 사명이다.
그럼, 법률사무소 여온은 장애인, 동성애자, 외국인 등을 위한 공익법 단체인가?
아니다.
우린 보다 보편적인 소수자성을 추구한다.
소수자는 동성애자, 장애인, 외국인 등 특정 사회적 신분에 고착된 개념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소수자는 “인간이 ‘특정한 상황’에 처할 때 드러나는 속성(‘소수자성’ 또는 ‘소수성’)을 한 개체에 고정한 것”에 불과하다.
소수자는 보편적이다.
우리 모두 ‘특정한 상황’에서 ‘소수자성’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수자가 되는 ‘특정한 상황’이란 무엇인가?
그건 바로 “말 못 하는 상황”이다.
소수자는 숫자가 아닌 권력의 문제이다.
권력은 목소리에서 나온다.
한마디로 목소리가 큰 사람이 주류이고,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 비주류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동성애자다.
친구뿐만 아니라 부모에게도 나의 정체성을 마음껏 소리 내어 말하기가 어렵다.
나는 이성애자다.
공연히 이성에 대한 호감이나 성적 욕구를 소리 내어 말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린 동성애자를 소수자라 부른다.
더 보편적인 예를 들어보자.
나는 범죄 피의자다.
수사관 앞에서 나는 한없이 초라한 죄인이다. 할 말이 없다.
나는 범죄 피해자다.
나의 비통함을 목 놓아 외치지만 누구도 듣는 사람이 없다.
범죄 피의자건 피해자건 모두 소수자다.
그래서 소수자가 되는 ‘특정한 상황’이란 ‘말 못 하는 상황’이다.
그럼 ‘말 못 하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소수자성’이란 무엇인가?
소수자성의 본질은 고독함이다.
외로움과 고독함은 다르다.
외로움은 사회적인 고립이고, 고독함은 존재론적 고립이다.
내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외로움을 느낀다.
내 주변에 사람이 많더라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고독하다.
“모든 사람 각각이 상자 하나씩을 가지고 있고, 그 속에 우리가 ‘딱정벌레’라고 부르는 것이 들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아무도 다른 사람의 상자 속을 들여다볼 수 없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각각 자기는 오직 자기의 딱정벌레를 봄으로써만 딱정벌레가 무엇인지를 안다고 말한다.”(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293)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하다.
누구도 자기 상자 이외에 다른 사람의 상자 속을 들여다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사고 실험도 인간 본연의 고독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사고 실험은 사고 실험일 뿐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타인의 이해는 고독감을 상쇄한다.
하지만 ‘말할 수 없는 상황’, 표현조차 할 수 없는 상태라면 아무리 주변에 많은 사람이 있다 한들 고독하다.
고독은 절망을 부른다.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였다.
그렇기에 우린 고독을 견뎌야 죽지 않을 수 있다.
업의 본질은 결국 내 업이 향하는 대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나는 자주 고독하다 못해 절망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로부터 내 업의 본질을 생각하니 답은 간명했다.
그렇게 여온이 추구하는 업의 본질은 “소수자를 위해 입을 여는 변호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절망하지 않도록, 문제로부터 해방되도록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 되었다.
나 역시 무시로 고독하다.
그럴 때면 이따금 스스로 상처를 내기도 타인에게 상처를 내기도 한다.
한심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나를 찾아온 다른 고독감이 나를 위로한다.
서로 다른 처지의 고독함을 느끼며, 나와 같은 고독함을 경험하며
서로 보듬고,
그렇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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