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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성공사례 칼럼 여온소식

결과는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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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률사무소여온
댓글 0건 조회 62회 작성일 24-08-23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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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지막이 대구역에 내렸다.

미리 잡아 둔 숙소에 들러 가방만 던져 놓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입맛도 없고, 마음도 심란해 정식을 먹기는 뭐하고, 허기만 달래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편의점 곳곳을 뒤져봐도 도대체 내키는 게 없다.

저녁은 됐다.

대신, 아마도 길어질 오늘 밤, 함께 할 친구가 필요하다.

편의점 주류코너에서 가장 저렴한 잭다니엘 한 병을 사 들고 숙소로 돌아온다.

 

 

보통 형사재판 선고기일에 변호인은 참석하지 않는다.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관례로 그렇다.

불문율이다.

난 오늘 그 불문율을 깨고, 내일 있을 형사재판 선고기일에 참석하려 대구에 왔다.

굳이 올 필요도 없고, 전날 미리 내려올 필요는 더욱이 없는 다소 소모적인 출장이다.

하지만, 견딜 수 없었다.

 

 

잭다니엘 한 잔을 들이켜고, 의뢰인에게 전화를 건다.

“안녕하세요, 의뢰인님, 어디세요?”

“네, 변호사님, 집에 있기 뭐해 밖에 나와 있습니다”

“많이 힘드시죠?”

“네, 그렇죠, 근데 변호사님, 혹시 대구에 오셨나요?”

불의타(수험생 은어로 “예상치 못한 문제”). 어떻게 알았지?

“어, 네 맞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그냥, 느낌이 그랬습니다.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잠시 볼 수 있을까요?”

사실, 오늘 의뢰인을 만날 생각은 아니었다.

그저 내일을 마냥 기다릴 수 없어, 하루 일찍 내려온 것뿐이다.

그런데, 들켰다. 의뢰인의 ‘느낌’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쩔 수 없다.

“네, 그럼요. 밖은 어수선하니, 제 숙소에서 잠시 뵙지요.”

 

 

잠시 후 누군가 호텔 방문을 두드린다.

문밖에 정리되지 않은 수염을 한 남자가 서 있다.

호텔 방안에 남자 둘이, 그것도 변호사와 의뢰인이 함께 있는 광경, 상상해본 적 없다.

“한잔하실래요?”

어색한 분위기에 잭다니엘 병을 집어 들며, 내가 먼저 묻는다.

“아닙니다. 오늘 술을 마시면 무너질 거 같아서요. 커피 한 잔 주십시오.”

이것도 불의타. 오늘 같은 밤, 술을 마다하다니.

급히 커피포트에 불을 올려 물을 끓이고, 커피 한잔을 낸다.

그새 나는 잔을 채운다.

 

 

그동안 사건 진행 경과를 설명하며 생색을 내어 본다.

물론 내키지 않지만(이 사건의 주임 변호사는 내가 아니라 김변이다. 그러니 사실 내가 생색 낼 것은 없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남자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고작 그뿐이다.

의뢰인이 불현듯 내뱉는다.

“변호사님,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나도 모르는 결과를 당신이 어떻게 안다고?

이어 말한다.

“전 이 사건으로 이미 많은 것들을 깨닫고 얻었습니다. 내일 재판 결과는 이미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 결과는 변호사님들과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입니다. 진심을 느꼈으니까요”

 

불의타의 연속이다.

내일 당장 구속되어 소중한 가족들과 이별해야 할지 모르는(물론, 그 이상의 절망적인 상황이 있으나 다 밝힐 순 없다) 오늘 밤, 의뢰인이 말하는 결과라는 게 우리와 함께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라니, 다소 섬뜩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아 그저 바라만 본다.

 

“다 느껴서 알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까부터 의뢰인이 느꼈다는 그 ‘느낌’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진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느낌’과 ‘결과’를 말하는 의뢰인의 눈빛에 체념이나 절망은 없다.

억지로 체념과 절망을 감추려는 모습도 아니다.

되려, 희망이 스친다.

 

이 사건을 주임한 김변의 부탁이 있었고, 인연에 인연이 닿은 의뢰인이라 살뜰히 챙겨야 한다는 마음에 대구에 왔다.

그보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이 남자가 지금껏 느꼈을 절망감을 상상하고, 내일 있을 결과를 이리저리 상상해보니,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리고 혹시 만난다면, 인생 최악의 순간, 가장 절망한 남자를 상상했다.

 

하지만, 희망이라니,

재판 결과를 초월한 또 다른 결말이라니, 이건 상상하지 못했다.

내 상상력의 한계를 뒤로 하고, 늦은 밤 헤어졌다.

 

짧지만은 않았던 대화를 곰곰이 되짚어 본다.

그러다, 내린 결론은

“이게 우리 업의 표준이다. 문제 해결을 넘어 해방에 이르게 하는 것”

“법의 결론을 초월한 삶의 해방을 꿈꾸는 것”

“우리의 진심이 그 삶에 닿는 것”

 

하지만, 난 여전히 불안정하고, 한 인생이 당면할 심대한 결론 앞에 잠들기 어렵다.

 

그렇게 잭다니엘 한 병을 비우고 나니 해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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