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게 아닌데? 어느 개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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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로에 작은 사무실을 차렸다.
괜찮은 연봉에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를 떠나 독립하기까지 많이 주저했다.
가뜩이나 변호사마다 굶어죽겠다고 아우성인데 막상 광야로 나서자니 두렵고 떨리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가긴 어딜 가’ 스스로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들에게 물었다.
“아빠가 뭐하는 사람이게?”
“변호사”
“변호사는 뭐하는 사람이게?”
“돈 버는 사람!”
충격이었다.
아들에게 변호사인 나는 돈 버는 사람이었다.
하기야 아들에게 아빠 직업이 변호사라고 말한 적은 있지만, 변호사가 뭐하는 사람인지 설명해주지 않았으니, 8살짜리의 답변으로는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들에게 변호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려고 입을 떼는 순간, 돈 버는 사람 이상의 무언가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어? 이게 아닌데?’
아버지는 내가 직업을 선택할 때, 두 가지를 당부하셨다.
‘넥타이를 매지 않을 것"
"출퇴근이 자유로울 것’
한마디로 자유롭고 주체적인 직업을 선택하라 하셨다.
나도 정말로 그런 삶을 살고 싶었고, 실제로 변호사는 그 기준에 부합하는 몇 안 되는 직업이다.
돈이 목적이 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매일 정해진 출근 시간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직장에 출근하여 하루 종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업무와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면, 내가 매고 있는 넥타이는 마치 교수대의 밧줄처럼 서서히 나를 죄어 온다.
그 대가로 꽤 많은 급여를 받는다.
이건 자유롭지도, 주체적이지도 못한 삶이다.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잠언 31장 8절)”
로스쿨에 입학할 무렵, 오랜 친구가 힘내라며 전해준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살리라 결심하고, 변호사가 되었다.
그러나 어느새 말 잘하고, 친구 많은 사람들의 무리에 끼고 싶어 돈 많은 기업 회장님께는 먼저라도 전화 걸어 생색내기 바쁘고, 평생 노상에 채소를 팔다가 옆집 가게 주인과 시비가 붙어 경찰 조사를 받게 된 노인의 전화는 피하기 바쁜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건 나를 이곳까지 부르신 그 분의 뜻이 아니다.
그래서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말 못하고 고독한 자들을 대신 해 입을 여는 변호사’가 되기로, 그러기 위해 애굽을 떠나 광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다음번 아들에게 “아빠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당당히 말해주기 위해, 무엇보다 날 부르신 그 분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이제 광야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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