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맥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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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누군가 내게 말했다.
“넌 땅이 꺼질까 걱정한다.”
난 걱정이 많다. 태생이 그렇다.
어쩌면 걱정이 많아 이 업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내 처지에 대해 걱정이 많고, 내가 맡은 사건에 대하여는 더욱 그렇다.
최악을 상정하고, 그 최악을 감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야 발걸음을 옮기는 편이다.
피로하다.
낙관 아닌 비관을 전제한 삶은 피로하다.
그래서 주변에 나의 존재가 부담된다.
그래서 그토록 바라던 사람을 떠나보낸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혼자 흘린 눈물이 많다.
그리고 고독해진다.
몹쓸 습관이다.
그렇게 고독해지는 순간, 이탈리아 사회학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을 떠올린다.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
하지만, 와닿지 않는다.
얼마 전 의뢰인이 통화 중 수줍게 말을 꺼낸다.
“오랜만에 곡을 하나 내었어요”
사건이 오래되면, 변호사-의뢰인은 어느새 친구가 된다.
내 의뢰인이자 오랜 친구의 노랫말 중 일부를 옮겨본다.
“해결할 수 없는 일 버텨보자 내일도, 세상사 다짐뿐이죠. 괜찮아요. 모두가 그렇게 살아요,
사실은 누구도 괜찮지 않지만, 소맥 한잔에 기분 다 털어버리고 웃으며 일어날게요”
꽤 오래된 사건이다.
그만큼 의뢰인이 감내했을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오늘 그의 고백이 내게 위로가 된다.
“해결할 수 없는 일, 소맥 한잔에 기분 다 털어버리고 웃으며 일어는 것”
오늘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는 법을 다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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